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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르차 제항기르 마할(07.1.21)

제항기르 마할

 

 

21일 일정 : 카주라호 호텔-오르차(제항기르 마할)-잔시

 

카주라호의 호텔에서 9시경 출발하여 오르차에 12시 30분경 도착하였다. 가는 길 중간에 있던 어떤 마을에서는 잠시 시장 구경도 했다.

카주라호 호텔을 떠나기 전

 

오르차 가는 길에 만났던 풍경들.

 

 

먼저 제항기르 마할의 부속건물인 레스토랑 쉬시마할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채 볶음밥이 저렴하긴 했는데 좀 짰다. 가격이 저렴했지만 세금은 많이 붙었다.

 

제항기르 마할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멋있었다.

시간이 많다면 구석구석 다니면서 보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2시간은 짧았다.

책에서 보았던 지하에 수로를 만들어 꾸민 정원도 보고싶었지만...

 

제항기르 마할은 오르차의 유적지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거대한 건물로, 마하라자 비르 싱 데오가 반란에 실패한 왕자 살림을 위해 지은 궁전이다. ~~중략~~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는 제항기르 마할에서의 백미로 건물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오르차 전경을 꼽는다. ~~후략~~(출처 : 인도 100배 즐기기)

살림왕자는 악바르 황제 말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오르차에 왔으며, 3년 후 1605년 악바르 황제가 죽고 살림은 무굴의 황제 제항기르로 등극을 하였다고 한다. 제항기르의 뒤를 이어 샤 자한이 황제가 되면서 오르차의 분델라 왕조의 권세도 급속하게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 인도 100배 즐기기)

 

제항기르를 나올려고 했더니 어떤 아저씨가 지하에 왕의 침실을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열쇠를 보여주었다. 아저씨를 따라가다보니 정면이 나왔다. 양쪽에 코끼리가 호위하고 있는 나무문이었다. 코끼리는 제항기르에게 꽃을 바치기위해 바구니(종) 같은 걸 물고 있었다. 땅속 같은 곳을 지나는데 불을 켜지않아 컴컴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군인들의 침실이 100개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안쪽의 창쪽으로 환한 곳에 마하라자와 마하라니의 침실이 있었는데 마하라니의 침실이 더 화려했다.

 

 

제항기르 마할을 나와 라자마할은 그냥 지나치고 건너편에 보였던 사원으로 이동하였다. 차뚜르부즈 만디르 사원은 처음에 입구를 못찾아 뒤쪽으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는데 입구 계단 아래쪽에 헤나 도장과 염료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원은 2층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전망이 좋고 시원했다.

 

차뚜르부즈 만디르 사원

옥상에서 땔감으로 쓰는 소똥을 말리는 모습

일행을 만나기로한 다리위로 가다가 과일을 사러 간 가게에 꼬마가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했다. 바나나를 사려고 하는데 갯수를 1~16까지 틀리지않고 세고나서 무게를 달아서 40루피라고 한다. 포도는 1kg에 60루피나 한다고 하여 비싸다고 40루피에 하자고 했더니 자기가 사오는 가격이 50루피라고 한다. 그래서 1kg과 한송이를 더 얹어 60루피로 해서 100루피를 주었다. 누구한테 한글을 배웠냐고 했더니 아빠한테 배웠단다. 아버지가 한국에 왔다간 적이 있나보다.

 

잔시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식사를 하는 모자를 만났는데 우리가 고추가 땡초처럼 보여 신기해하자 먹어보라며 건네주었다. 짜파티와 집에서 곡물을 튀겨서 엿에 버무린 우리나라의 강정같은 것이었다.

 

잔시에서 아그라가는 기차는 테이블이 있는 고급 좌석(특급열차)으로 물과 간식(과자+짜이)이 나왔다. 개인용 물도 1인용 포트에 담아서 갖다 주었다. 짜이는 맛이 괜찮았다.  

8시 12분 아그라에 도착하였고, 8시 45분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 글은 다음 블로그의 폐쇄로 백업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2023년 다시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