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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2011.1.29 프라하(댄싱 하우스-구시가지-유대인 지구)

댄싱하우스를 배경으로

 

오늘은 시간을 봐서 체스키를 갔다 오자고 하며 어제 일찍 잤는데 일어나보니 8시 였다.

그래서 체스키는 포기하고 아델 지하철 역 안에 있는 매표소에 가서 체스키 가는 표만 예매를 했다(가는 표 아침 8시 30분 179코루나, 돌아오는 표 오후 6시 195코루나).

 

아델역에서 나와 지하철 B호선 다음 역인 댄싱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일단 강 쪽으로 길을 잡고 가다보니 아주 큰 맥주회사 건물이 나왔다.

 

그 회사를 지나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리를 하나 지나고 강가에서 백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일가족이 보여 구경을 갔는데 나한테도 빵 한 조각을 주어서 나도 빵조각을 던져 주었다.

그런데 한 마리가 계속 다른 놈들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는 작은 청둥오리한테까지, 나중에는 스스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헤엄쳐 가는 게 보여 참 씁쓸했다.

새들의 세계에서도 왕따와 힘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블타바강의 백조와 청둥오리

 

백조에게 먹이를 주다보니 강 건너 댄싱하우스가 보였다.

 

 

다시 길을 재촉해 두 번째 다리가 보여서 계단을 올라 건너편에 보이는 댄싱하우스를 보며 다리를 건넜다.

멀리서 볼 때는 주변 건물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갈수록 창의 높이가 다르다는 것과 건물에 있는 물결무늬가 보였다.

프라하 신시가지에 있는 댄싱하우스

 

강 건너에서 당겨서 찍은 댄싱하우스

 

댄싱하우스로 가는 다리

 

댄싱하우스(내셔널 네덜란드 빌딩)는 프라하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블라도 밀루닉이 주도를 했는데 그가 당시의 체코 대통령이었던 하벨 대통령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대통령의 아파트에 인테리어를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댄싱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2차 세계대전 미군의 폭격으로 19세기 건물이 파괴된 곳으로 대통령은 그곳에 프라하의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건물에 대하여 밀루닉에게 설명했고, 밀루닉은 어두웠던 프라하에 찾아온 봄을 상징하기 위해서 건물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모습의 디자인을 의도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 음과 양, 정적이고 동적인...

대통령과의 논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정리한 밀루닉은 기술적으로는 물론 반대론자들과 맞서기 위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가 필요하여 먼저 프랑스의 장 누벨에 의뢰를 했는데 거절당하고, 다음으로 당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디자인하고 있던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밀루닉의 초기 개념을 이해한 프랭크 게리는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였고, 두 개의 볼륨으로 나눈 모형을 만들고 살펴보다가 유리로 만든 타워가 바로 옆 건물에서 블타바강 건너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시야를 가로막는 것을 알아차리고 유리 부분의 옆구리를 살짝 눌러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댄싱하우스의 별칭은 ‘프레드와 진저’로 불리는데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댄싱 커플인 프레드 에스테어와 진저 로저스라고 한다. 건물의 뒤틀어진 유리 블록이 진저, 이를 지탱하는 원형 블록이 프레드라고 한다. 이 건물을 보고 프라하의 역사학자들은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이라고 비하했지만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참조 : 유럽의 발견, 김정후 지음)

 

건물 안에 들어가 봤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고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카페라떼(70코루나)만 한 잔 마시고 나왔다.

라떼를 유리잔에 주는 두 번째 집이었다.

 

댄싱하우스

 

댄싱하우스의 들어간 부분과 높낮이가 다른 창문
댄싱하우스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찍기 시작한 사진을 도로 이쪽저쪽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사진을 찍은 뒤 지도상 멀지 않아 보였는데 강을 따라 돌다보니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

 

플로렌스역까지 블타바강을 따라 걸어가서 오스트리아 빈가는 차표(390코루나)를 예매했다.

표를 예매하고 옛 시가지로 나갔는데 이 길은 짧았다.

날씨가 좋아 오후 3시쯤 다시 시계탑의 시계 쇼를 보았다.

블타바강과 카를교

 

틴교회는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고딕양식의 교회로 높이가 80m나 되는 첨탑이 2개 있다. 원래 1135년에 외국 상인을 위한 숙박 시설의 부속 교회로 지어졌다고 하며, 현재의 모습은 1365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고, 15세기 전반에는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낮에 본 틴교회

 

 

밤에 본 틴교회

 

화약탑 근처에 있던 쇼핑센터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시민회관에서 하는 공연(8시 30분) 표를 예매하고 유대인 지구를 찾았다.

유대인지구는 토요일이 휴일이라 묘지나 시나고그를 바깥에서만 보고 돌아섰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1270년에 세워진 유대 교회당

 

다시 쇼핑센터로 가서 늦은 점심으로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지브롤터와 같은 빵이 아니어서 실망했다.

점심을 먹으며 정샘이 유대인 지구 안에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는 말을 하여 공연 전까지 시간도 남고하여 찾아 나섰다.

정말로 카프카의 동상이 있었고 옷만 있고 사람은 없는 동상위에 카프카가 앉아 있고, 발아래 보도블록으로 만든 더듬이와 여러 개의 발을 가진 벌레 형상이 보였는데 어두워서 모양이 선명하지 않아 아쉬웠다.

카프카동상
보도블록 색깔을 달리하여 만든 더듬이

 

다시 쇼핑센터로 돌아가 공연 전까지 이 가게 저 가게 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시민극장으로 갔다.

안내문에는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더니 바이올린 6대, 첼로 1명의 합주단이었다.

공연장도 앞쪽 붙박이 좌석은 1,000코루나, 뒷줄에 놓은 좌석은 800코루나(약 48,000원)였다.

표를 살 때만 해도 공연이 유명한 곳이라고 하여 보았는데 지나놓고 보니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사실 한국에서도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이었고, 마지막에는 잠까지 왔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굉장히 공연에 열중하고 곡이 끝나면 열렬한 박수를 쳐주었고 결국 앵콜 공연을 받아냈다.

앵콜 공연으로 한 바이올린 줄을 튕기며 하는 연주는 기발해서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