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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2011.1.19 세비야

세비야의 가로수 멀구슬나무

 

아침을 먹고 그라나다 까사 보니타 숙소를 나와 오늘 우리가 묵을 Macia Plaza Hotel까지 가서 세비야를 갔다가 온다는 사정을 말하고 짐을 맡기고 세비야로 가는 버스(ALSA)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는 시간이 남아서 커피까지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리고...

 

숙소 사장님이 세비야 가는 표를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주었었다.

우리가 터미널까지 가는 수고는 덜었지만 세비야에서 출발할 때 버스 타는 곳이 내린 곳과 다른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었고, 우리도 예매한 표를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해서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갈 때 요금은 19.93유로였지만 돌아오는 버스 값은 25유로로 비싼 표였는데 날려버렸고, 택시요금에 버스카드 산 거 사용도 못했으니까 날린 돈을 계산하면 정말 배 아프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 가는 길에는 대부분 올리브가 심어져 있고, 간간이 밀밭이 보였다. 그리고 도로의 중앙분리대에는 캘리포니아처럼 협죽도가 심어져 있었다. 여기도 두더지가 활동을 하는 건지.... 공원이나 길거리에도 의외로 협죽도가 많았다. 하기야 이 사람들은 협죽도 가지를 잘라서 젓가락으로 사용할 일은 없으니까 별로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협죽도에는 독이 있음.)

 

10시에 출발해 3시간 걸려 오후 1시에 도착한 세비야 터미널(산 세바스티안)을 나오니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는 잎은 떨어지고 없는 멀구슬 나무와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 도시의 첫인상은 좋았다.

세비야 오렌지나무 가로수

 

트램(1.30유로)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가니 대성당(입장료 8유로)이었다.

대성당은 규모도 규모지만 안의 장식이 어마어마했다.

보물실에 있는 금장식과 왕관, 금컵 등을 보니 얼마나 남미에서 약탈을 했을까 씁쓸했다.

스페인에 부를 안겨준 콜럼버스의 관을 4개주의 왕들이 어깨에 메고 갈만해 보였다.

콜럼버스의 묘를 보고 히랄다 탑을 올랐다.

 

콜럼버스의 관
4개주의 왕들이 콜럼버스 관을 메고 있다.

 

히랄다 탑은 이슬람이 만들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사원은 부쉈지만 탑은 그대로 두고 대신 꼭대기에 종탑을 세워 기도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탑은 사각형이었는데 다른 탑들이 계단이었는데 비해 이곳은 경사로였는데 왕이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꼭대기에는 히랄다라는 풍향계를 설치하였다.

 

세비야 트램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정면 모습
대성당 정면에 있었던 히랄다(풍항계)

 

히랄다 탑

 

히랄다 탑을 보고 기념품 구경하고 이슬람 사람들이 사원을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던 곳이었던 오렌지 안뜰에서 놀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성당 앞에 있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오늘의 메뉴를 시켰다.

 

세비야 오렌지 안뜰
오렌지 안뜰의 오렌지가 잔뜩 달린 오렌지나무

 

정어리 삶은 물에 감자와 새우, 오징어, 완두를 넣고 푹 끓인 찌개 같은 것으로 맛은 있었지만 끝맛은 약간 비렸다.

마늘을 조금만 넣었어도 개운 했을텐데...

배는 불렀지만 비려서 바로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2.20유로) 한 잔을 사서 마시면서 알카사르에 갔더니 5시 2분전이었는데 입구가 맞나 망설이고 있는 사이 문이 닫혔다.

그래서 아쉽게도 알함브라보다 타일이 화려하다던 대사의 방을 볼 수 없었다.

 

오늘의 메뉴. 새우가 감자가 들어가서 맛은 있었지만 조금 비린 음식

 

다음 장소는 스페인 광장으로 가다가 옛날에 담배공장이었다던 세비야대학을 둘러보았다.

학교 앞 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젊은 애들이 많아 왜 그런가 했더니 대학교 앞이어서였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현 세비야대학 법학부 건물이 담배공장일 당시 공장을 지키던 경비병 돈 호세가 파티오(정원)에서 카르멘을 만나 요염한 매력에 빠지지만 해적으로 타락한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세비야대학이 예전에 담배공장이었다는 타일장식

 

학교를 나와 스페인광장을 가니 해가 질 무렵이라 붉은 건물이 더욱 붉게 보이며 멋있었다.

스페인의 주를 상징하는 역사를 상징하는지 모를 타일 그림이 회랑을 따라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지도 모양 타일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 있는 그림 중에 돈키호테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스페인 광장 전경
돈키호테로 타일로 장식된 벽면
정샘이 산 땡땡이 부채를 들고.. 뒤로 벽면에 장식된 타일들이 보인다.

 

세비야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처음 출항했다는 과달키비르강이었다.

그래서 세비야는 1503년부터 아메리카 식민지와의 단독 무역 거래를 통해 엄청난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300년 뒤 흑사병과 강에 토양이 쌓이면서 항구기능을 상실하면서 쇠락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 세비야가 안달루시아의 수도가 되고, 세비야 출신 총리가 선출되어 엑스포를 유치하고, 마드리드와 연결되는 고속열차 AVE가 개통되면서 다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착했을 때 강은 어느새 어둠이 찾아와 강에 있는 다리의 불빛과 유람선이 운치가 있었다.

 

과달키비르강

 

스페인광장 근처에 있는 공원은 규모가 엄청났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부러웠다.

 

강을 보고 시간을 맞춰 7시 15분정도 전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매점에서 먹을 것도 사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갔는데 그라나다 가는 버스가 안보였다.

그래서 정샘이 매표소로 물으러 갔는데 세상에나 그라나다행 버스가 다른 정류장(아르마스 광장)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누가 버스가 도착한 곳과 출발하는 곳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나...

급히 택시(5유로)를 타고 달렸지만 택시기사 아저씨 하나도 바쁜 기색 없이 느긋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엄청 달리고 버스가 출발했다면 버스를 따라서 데려다 줄 텐데, 말도 통하지 않고 결국 우리는 5분 상관으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화가 나서 매표소에 가서 표를 교환해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새벽 3시에 첫차가 있다고 한다.

표를 안 바꿔 줄려고 그랬던 것 같다.

분명 11시 차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매표소를 나와 검색코너에서 11시 차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표를 끊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고 tax가 2유로가 붙었다.

그렇게 4시간을 기다려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2시 40분쯤 그라나다에 도착하였다.

그라나다에 도착할 때 쯤 걱정을 해서 그런지 도착하기 10분 전 쯤에 잠이 깼다.

 

이용횟수가 남은 버스카드는 사용도 못하고 택시(6.30유로)를 타고 누에바 광장에 있는 Macia Plaza 호텔로 갔다.

다른 호텔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우리가 맡긴 짐 때문인지 다행히 우리가 묵을 호텔은 불을 켜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호텔방은 깔끔했고, 빨래 건조대도 있었다.

세수만 하고 늦었지만 잠을 청했다.

 

버스를 놓쳐 날린 돈은 물론 아까웠지만 다음날 바르셀로나로 가야했기 때문에 그라나다로 올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고, 우리가 올 때까지 불 켜놓고 기다려준 호텔이 정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