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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12.2.8.수. )

 

 

2월 8일 일정 : 센트로 지역(대극장-까삐똘리오-빠르다가스)-베다도 지역(아바나대학-혁명광장)

 

주인 아줌마가 우리 식사준비에는 신경 안쓰고 짐 맡기고 나가는 애들 커피 대접한다고 한참을 기다리라고 했다.

8시 45분경 준비가 되어 막 아침을 먹으려는데 9시 약속 시간 10분 전에 야니리스가 숙소로 찾아왔다.

같이 먹자고 했더니 먹고 왔다고 사양했다. 

 

야니리스와 같이 먼저 중앙공원과 아바나 대극장으로 갔는데 야니리스가 있으니 신경이 쓰여서 인물사진은 특히 찍는게 그래서 사진을 적게 찍게 되었다.

까삐똘리오는 수리를 한다고 못들어가게 하였다.

빠르다가스 시가공장은 1층 매장에서 가격을 보니 핸드메이드라 너무 비쌌다.

산타클라라 숙소 앞에 있던 공장에서 만든 것은 몬테크리스토라고 하고, 제일 유명한 시가는 꼬히바(Cohiba)로 25.95cuc이었고, 제일 싼 것이 6cuc가 넘었다.

기계로 만다고 했던 관타나메라는 1개비에 1.30cuc이었으니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

 

아바나 대극장

 

까삐똘리오

 

빠르다가스 시가공장

 

시가 판매장에 있던 제품과 시가 관련 사진들.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사진으로만 봐도 담배잎이 굉장히 넓고 커 보인다.

우리나라 담배잎은 폭은 좁으면서 길이가 긴편인데 쿠바거는 잎폭은 넓고 길이는 좀 짧아보인다.

 

 

다음으로 Prado를 지나서 혁명박물관으로 갔다.

입구쪽에서 보이는 곳에 그란마호와 탱크, 경비행기, 미사일이 유리관 밖에 있었다.

그란마호는 유리전시관 안쪽에 있었는데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입장료는 외국인이 6cuc이고, 카메라 촬영료가 1cuc이나 해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입구에서 불꽃도 타오르고 있었다.

 

 

쁘라도(Prado)

 

그란마호

 

다음에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야니리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선생님이 궁금하기도 하여 보러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안와서 말레콘을 통해 걸어서 갔다.

좀 긴 거리인데다 날도 더워서 힘들었지만 어떤 사람이길래 쿠바에 와서 살게 되었고,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김'이라는 사람은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길래 젊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적었다.

선교 목적으로 온 것 같았다.

아바나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데 한 학기가 2달인데 2~3과목을 배우면 과목마다 논문을 써야 해서 공부가 무척 힘들다고 하였다.

방학은 겨우 1년에 2주 정도라고...

아뭏든 쿠바에서 오래살아서 다양한 쿠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말레콘 제방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국립호텔 근처까지...

 

 

몰랐는데 쿠바 돈 10cuc에 그려져 있는 발전기 그림은 현대중공업이 8억불에 완공한 것으로 쿠바의 전기 사정이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였다.

 

 

민박업인 까사는 최근에 허가를 많이 해주었는데 일정금액을 국가에 세금을 내야한단다.

손님이 들지않아도...

또 까사에서 관광객이 물건을 잃어버리면 까사 주인이 배상을 해야하기때문에 절대 손님 물건에는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 남의 것을 훔쳐서 생활하는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 좀 도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밤에는 내가 목에 걸고 다니는 큰 카메라 같은 것은 내놓고 다니지 말라고 하였다.

 

트리니다드에서 먹었던 바다가재가 생각나서 폰세가 음식도 한다고 하여 저녁에 먹게 해달라고 하였다.

점심은 길거리에서 사먹을거라고 했더니 조금 비싸보이는 식당으로 안내를 하였다.

'김'이 자기가 산다고 했는데 가격이 많이 쌌다.

쇠고기 정식이 음료와 후식까지 포함하여 4.50cuc이었다.

그곳이 외국인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 1층에 있고 바로 옆이 방송국이라 저렴하다고 하였다.

카페이름도 'cafe TV'였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외국의 축구를 중계해주는 것을 볼 수 없어 바르셀로나 경기를 비롯한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보러 온다고 하였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손님이 몇 없더니 어느 순간 꽉 찼다.

시선은 TV에 가있고...

쿠바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다가 최근에야 먹게 되었는데 비싸서 그런지 식당에 오면 소고기(까르네 데 Res)를 시킨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전날, 한 해 마지막 날에는 식구들끼리 모여 소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소고기 정식은 정말 푸짐했다.

고기도 크고, 밥은 거의 2인분을 주었다.

그런데 고기는 좀 질겼다.

사주는 음식이라 남기기가 뭣해서 배가 부른데도 다 먹었다.

음료는 다른 곳에서는 따로 계산하는데 이곳에서는 Malta라고 하는 쿠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주었다.

거품이 많이 일어나는 검은색의 음료인데 맛은 조청 맛이었다.

술 만드는 과정과 거의 같다고 하는데 알콜 성분은 없다고 한다.

 

후식으로 나온 초코 아이스크림.

 

또 쿠바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설탕을 팔지 못하게 되면서 소비를 많이 하게되어 당뇨병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차에도 설탕을 넣어먹고...

김의 말로는 1인당 2.5kg이 매달 배급된다고...

 

특이한 것은 쿠바에서 보트를 이용하거나 해서 미국으로 들어가면 시민권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직계 가족이나 부부는 초청도 가능하단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다가 붙잡혀오더라도 감옥에 보내거나 하지않고 그냥 풀어준다고 한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나라에서도, 쿠바에서도 원하는 곳에서 살 수가 있다고...

 

점심을 먹고 저녁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아바나대학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바나대학은 겉모습만 봐도 역사가 깊어 보였다.

입구 계단 위쪽에는 '어머니의 영혼'(모성애)이라는 여신상이 있었다. 

아바나대학은 옮겨왔는데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들어온 50~60년대에 생산된 차들은 기름이 많이 드는데 불법으로 유통되는 기름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또 차 번호판 색깔이 다양했는데 가장 많이 보이는 파란색 바탕은 국가 소유이고, 노란색은 개인 소유, 자주색은 앞에 T가 붙는데 렌트카라고 하였다.

주황색은 외국인들이 타는 차에, 녹색은 군인, 밤색은 고위관료, 흰색은 국회의원(최고 당직자), 검은색은 외교관이 탄다고 하였다.

경찰이 단속을 하지않는 차는 녹색과 흰색 번호판이라고 한다.

 

여행객이 타는 렌트카. 현대차이다.

국가 소유 자동차

쿠바 길거리에서 만났던 1950~1960년대에 미국에서 생산된 차들.

 

 

 

아바나 대학을 보고도 시간이 남아 김이 혁명광장을 가봤냐고 해서 못봤다고 하니 거리가 멀다고 하며 택시를 잡았다.

올드카 택시는 차량 크기가 크기때문에 5명의 손님이 탈 수 있다면서 흥정을 하여 혁명광장에 내려 잠시 사진을 찍었다.

혁명광장에서는 정부 부처 건물 벽면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있었고, 아래에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가 적혀 있었다. 

오른쪽에는 피델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혁명기념탑이 높게 솟아있고, 그 앞에 호세 마르띠 상이 있었다.

광장은 굉장히 넓었고 사진만 찍고 택시기사가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혁명광장으로 택시타고 가려고 흥정하고 있는 '김'

 

혁명 광장의 혁명기념탑

 

혁명광장 주변 정부부처 건물 벽에 있는 체 얼굴

 

피텔의 얼굴이 있는 건물

혁명광장에서 체와 피텔의 얼굴이 있는 건물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갔을 때 소화도 시킬 겸 걷자고 하여 택시에서 내렸다.

어딘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이 안내를 하여 간 곳에는 북한대사관 건물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다시 말레콘 쪽으로 나왔는데 Melia Cohiba가 보였다.

제일 유명한 호텔이라고 하는데 입구쪽 국기게양대에 북한국기가 걸린 걸 보니 북한 고위관료가 온 것 같다고 김이 말했다. 시간이 좀 남아 김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우리는 말레콘 제방에 앉아 쉬었는데 야니리스는 정샘과 계속 영어로 필담을 나눴다.

 

말레콘 방파제 앞의 바다.

이날은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기도 했다.

 

김이 운동장을 돌던 체육관

 

 

우리가 저녁 먹으러 간 곳은 폰세라는 사람의 집이었는데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고 1912년에 지었다고 하였다.

폰세도 김한테서 한글을 배웠는데 꽤 잘했다.

우리가 걸어가서 힘든지 알고 먼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유리컵에 시원한 물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커피도 대접했는데 무지 달았다.

폰세는 한국어를 잘했고 궁금한 것은 질문을 해서 해결하려는 노력하는 형이었고, 야니리스는 약간 수줍음이 많아서 질문은 가끔 했고 정샘이 영어를 하니까 정샘한테 주로 영어로 뜻을 물어보았다.

 

식사전에 김은 부인이 기다린다고 갔다.

우리가 저녁을 대접한다니까 야니리스를 사주라하고...

폰세가 준비한 바다가재 요리는 보기는 좋았는데 너무 짜서 실망스러웠다.

1인당 10cuc을 지불하였다.

 

야니리스는 한글을 더 열심히 배워서 한국에 와서 공부를 더 하고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야니리스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중미지역을 여행할 때 대부분의 차들은 일본 차들이었다.

그런데 쿠바에서는 우리나라 차들이 제법 보였는데 신기해서 김한테 물어보니 기아차(리오, 비토스)는 캐나다 사람이 수입하여 렌트카의 90%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비중이 낮아졌다고 한다.

대우의 티코나 버스는 대우자동차에서 예전에 직접 들여왔다고 하고, 지금은 중국 자동차가 버스를 비롯하여 거의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은 다음 블로그의 폐쇄로 백업 받은 2012년 여행기 자료를 2023년 티스토리로 옮긴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