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신전에서 바라본 열대림과 피라미드.
플로레스는 페텐 주의 주도로 수도인 과테말라시티로부터 약 450km 떨어져 있으며, 섬 위에 떠 있는 도시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젯밤에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서 다리만 건너온 것이었다.
어제 너무 늦게 도착하여 씻고 잔 시간이 새벽 1시쯤이었다.
그래서 8시쯤 일어나 아침이 안되기 때문에 준비를 다하고 내려가 10시에 띠깔로 출발하는 걸로 예약하고 아침을 해결하고 환전을 하기위해 번화가로 갔다.
이곳의 은행은 입구에서 경찰이 지키고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용무를 말하면 들여보내 주었다.
환율은 1$에 7.71케찰.
밥먹을 데가 마땅찮아 조그만 가게에서 빵과 바나나를 사고 좀 큰 슈퍼에서 물과 쥬스를 사서 거기서 간단히 먹었다.
아침에 띠깔유적지로 출발하기 전에 호텔 앞과 호텔 옥상에서 플로레스에서 페텐으로 나가는 다리를 찍은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가 세이바나무.
Casa Blanca 호텔에서 10시 10분쯤 우리가 제일 먼저 봉고를 탔는데 차가 지금까지 탄 차 중에서 가장 새 차였다.
3명이 더 타고 출발.
1시간 이상 걸려 도착한 띠깔 매표소는 현지인은 25인가인데 관광객은 150케찰을 내야했다.
매표소에서 유적지 시작하는 곳까지 약 15분 정도 숲길을 달렸다.
가이드가 지도를 한 장 주면서 안내판 있는 곳까지 가서 설명을 하고는 유적지를 둘러보고 오후 5시 10분전까지 나오라고 하였다.
띠깔 전체 지도를 그려놓은 안내판을 가기 조금 전에 마야 아스텍 책에 나온 큰 세이바 나무가 보였는데 렌즈를 광각으로 바꾸지 않아 나무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올 때 찍자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나올 때는 약간 어두워서 나무가 잘 나오지 않았다.
코판을 나오면서 광각렌즈로 찍은 세이바나무.
티칼 안내지도.
세이바를 만난 뒤 본격적으로 유적지 탐방에 나섰는데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화려한 칠면조(Pavo Ocelado, Occellated Turkey)였다.
울창한 열대림 사이로 난 길을 지나고 광장을 통과하니 1호 신전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돌아서 정면으로 갔더니 올라갈 수는 없게되어 있고 보수중이었는데 마주보고 있는 2호 신전보다 더 높아보였다.
2호 신전은 꼭대기 부분이 좀 망가지긴 했는데 옆에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1호 신전을 마주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곳까지 돌을 쌓아 올렸을까?
우리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것만도 힘들었는데...
1호 재규어 신전(높이 45미터)
2호 신전에서 바라본 1호 신전과 왼쪽으로 보이는 곳은 북쪽 아크로폴리스.
[마야 문명에 대한 참고문헌에 나온 설명]
마야문명은 지금의 멕시코인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차, 팔랑케, 과테말라의 띠칼(Tical), 온두라스의 코판 등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중 마야의 뉴욕이라 불리는 티칼은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과테말라 북구 페텐 지방의 울창한 밀림 속에서 발견된 티칼 유적은 현재 남아있는 마야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고전기 마야 왕국 중 가장 강성하였다. 티칼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티칼은 기원전 800년 마야인이 처음 정착하여 도시를 이루었고, 기원전 200년 경에는 북쪽의 성채가 지어졌다. 전성기였던 900년 경에 오늘과 같은 도시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최전성기의 티칼은 인구 10만 명에 이르는 뉴욕의 맨해튼 규모였다고 한다. 한번 상상해 보라. 20~30미터를 훌쩍 넘는 밀림 사이를 헤치고 뉴욕의 마천루들 못지않은 신전들이 우뚝우뚝 솟은 거대한 도시의 모습을. 그러나 밀림 속에 어떻게 돌을 운반해 거대한 피라미드형 신전과 도시를 세웠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이렇듯 영화를 누리던 티칼은 10세기 무렵 돌연히 정글 속에 버려졌다. 마야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터전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 티칼에는 6개의 신전과 궁전 의식용 제단, 공 놀이장, 광장, 주거지, 저수지 등 3천여개에 이르는 건물과 200여점의 석상과 비석이 남아 있다. 또한 10만 점에 이르는 유물과 100만 점에 달하는 토기가 발굴되었다고 하니 번성했을 당시 도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된다.
티칼의 피라미드는 마야의 다른 피라미드보다 더 높고 더욱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신전 건물의 상단부와 지붕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신전 내부 공간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재규어의 신전이라 불리는 1호 신전은 50미터(현지에서 제공한 지도에는 45미터) 높이의 매우 웅장한 피라미드로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9단의 기단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신전 기능 외에도 마야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건축 양식이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간 피라미드는 마치 뉴욕의 마천루를 연상시키는데 티칼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신전 위에는 건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멍을 낸 우아한 루프콤(roofcomb, 신전 꼭대기를 장식하는 건축 요소)이 얹혀 있다. 6기의 신전중 규모가 가장 큰 1호 신전은 인간이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산을 찾아보기 힘든 밀림에서 피라미드는 신성한 산을 인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루프콤의 성소는 사제와 귀족만이 출입했고, 평민들은 피라미드 아래 공장에서 의식에 참여했다고 한다.(참고문헌 : 땅을 딛고 마야 아스텍 문명 위에 서다. 223~225쪽)
2호 신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처음이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2호 가면의 신전(높이 38미터).
중앙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왼쪽으로 2호 신전이, 오른쪽으로 1호 신전이 보이고, 맞은 편에 북쪽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준비해 간 음식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정샘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신전이 2호 신전이다.
북쪽 아크로폴리스(비석이 앞에 서 있고 무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로 올라가서도 1호 신전의 옆모습을 보았는데 2명이나 외국인이 신전과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참 여유로워 보이고...그림만 잘 그린다면 스케치로 표현하는 것도 나름 멋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재주는 없으니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멋진 풍경을 열심히 담아야지...
북쪽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왼쪽 신전이 1호, 오른쪽이 2호 신전이다.
다음으로 3호와 4호 신전을 보러가야하는데 4호 신전 가는 이정표만 보이고 3호 신전은 안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3호 신전은 열대림에 폭 쌓여있어 접근이 불가능했고 4호 신전에 올라갔다가 나오다가 열대림 사이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3호 신전을 보았다.
4호 신전(65미터)은 나무계단을 올라서 갔는데 2호 신전을 한 번 올라봤다고 오르기가 한결 수월했다.
정상 부분빼고 아래는 열대우림이 숲바다를 이루고 있어 더 장관이었다.
4호 신전에서는 열대림에 묻혀있는 1호, 2호, 3호, 5호 신전이 모두 보였다.
너무 멋져서 감탄이 절로 났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한참을 머무르다 내려왔다.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사진찍으러 내려갈 때 약간 무섭기도 했다.
4호 신전에서 내려다 본 모습.
가운데 왼쪽부터 1호, 2호, 왼쪽에 나무로 가려진 곳이 3호, 가장 오른쪽이 5호 신전.
4호 신전에서 내려와 5호 신전으로 가는 길에 열대림 속에 3호 신전(높이 55미터)의 모습이 보였다.
5호 신전가는 길에는 미국너구리과의 꼬리가 긴 코아티(Coati 또는 Pizote)를 엄청 만났는데 입이 두더지처럼 길어 계속 땅을 파며 먹이를 찾는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싸움도 하며 무슨 소리가 들리니까 위협을 느꼈는지 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5호 신전은 위험하다고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고, 숲속에 있어서 그런지 계단에 이끼가 가득이다.
5호 신전이 티칼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6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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