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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2011.2.1 빈(쇤브룬-케른트너거리-슈테판사원-그라벤거리-호프부르크-발레 공연

2월 1일(화) 쇤브룬 궁전-케른트너거리-슈테판사원-그라벤거리-호프부르크궁전-데멜-발레 공연

 

데멜에서

 

아침부터 화장실 옆방에 묵는다는 미국에서 왔다는 교회 사람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쿵쿵거리며 다니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우리 방에서 잤던 민박집 사장이 아침을 하러 나가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였다.

미국에서 전도하러 왔다는 어른들이 화장실은 엉망진창이고 아침부터 시끄럽게 모여앉아 찬송가를 부르고 난리다.

 

먼저 쇤브룬 궁전을 보러가서 40개 방을 볼 수 있다는 그랜드 투어보다 비싼 Sisi 티켓을 22.50유로에 끊었다.

40개의 방과 황실 가구 수집관과 호프부르크 궁전의 시시박물관을 볼 수 있는 티켓이었다.

궁전에는 삼성에서 지원하여 한글 오디오 가이드도 있었는데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왜 그러나 했더니 궁의 두 군데 방이 완전히 중국풍이었다.

방 한 곳은 화려하게 금칠한 받침대 위해 작은 푸른 도자기들이 앙증맞게 올려져 있었고 개수도 아주 많았다.

다른 한 방은 푸른색을 많이 사용한 벽지에 중국풍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쇤브룬 궁전

 

쇤브룬 궁전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이자 오스트리아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남편 슈테판, 요세프왕과 엘리자베스 왕비(일명 시시)와 관련된 곳이 많았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30년 결혼생활동안 아이를 16명 낳아서 5명이 죽고 11명이 살아남았는데, 딸 하나만 빼고 오스트리아를 위해서 모두 정략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바로 여제의 막내딸이 프랑스 왕(나중에 루이 16세)과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한다.

 

쇤부른의 정원은 어마어마했는데 겨울이라 너무 황량했다.

잎이 까치박달을 닮은 느릅나무인지를 알람브라의 사이프러스처럼 반듯하게 모양을 맞춰 잘라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보니 가로수는 한 아름은 충분히 넘을 수령이 오래된 마로니에였는데 몇 그루는 죽었는지 베어내서 둥지만 남아 있었다.

  

 

시내로 돌아와 케른트너 거리를 따라 걸어 슈테판 성당을 보았다. 다른 성당과의 차이점은 지붕의 타일이었다.

 

슈테판 성당
슈테판 성당 지붕

 

슈테판 성당을 지나 근처에 있다는 100년이 넘었다는 피그뮐러에 슈니첼을 먹으러 갔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우리가 갔을 때도 우리 옆 테이블에서는 촬영이 있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나중에 혼자 온 아저씨 한 사람과 나이 든 여자 두 분과 합석을 해야 했다.

슈니첼은 송아지로 만든 돈까스 같은 것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감자 샐러드와 와인을 같이 주문했다.

아저씨는 큰 슈니첼을 천천히 다 드셨고, 옆의 여자 분들은 조금 남겨서 포장을 해갔다.

우리는 슈니첼이 워낙 양이 많은 거라서 어린이용 슈니첼(어른용 13.80유로, 어린이용 7.90유로)과 야채샐러드(3.80유로)와 포도주스(2.50유로)를 시켰다.

 

소스가 없어 어떻게 먹나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고기가 부드럽고 샐러드와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끝에는 약간 질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김치가 생각났다.

어린이용 슈니첼

 

피그뮐러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그라벤 거리를 걸었다.

중간에 페스트 기념탑이 있었는데 금칠을 한 건지 진짜 금인지 왕관 모양의 장식이 눈에 거슬렸다.

 

호프부르크 궁은 너무 넓었는데 겨울 궁전이라고 한다.

건물 아래 아치형 문으로 자동차도 지나다니고 사람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다양한 박물관이 많았는데 우리는 먼저 부르크 정원을 찾아 모차르트를 만나고 경계 바깥에 있던 괴테도 보고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여제의 남편인 슈테판 기마상을 보았다.

 

건물을 돌고 돌아 시시박물관에 들어갔는데 전시관에 들어가 가정 먼저 본 것은 당시에 사용한 많은 크리스탈 잔과 그릇들, 요리 도구들이었다.

조금 보고 있는데 친절한 안내원이 안쪽에 있는 시시박물관이 입장 10분전이라고 하여 나머지 전시관들은 그냥 통과하면서 지나가고 K방으로 바로 갔다.

실물 크기의 왕비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형도 여러 개였고, 결혼식 때 했던 빨간 루비가 박힌 보석들을 치장한 그림, 긴 머리에 별모양 핀을 꽂고 있는 반쯤 돌아보는 별 드레스를 입은 모습 등 화려함의 극치였다.

 

시시왕비는 15살에 결혼했는데 자기가 팔려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행복해하지 않았고, 틈만 나면 화려한 마차를 타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다녔다고 한다.

4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1명은 아파서 3살 때, 한 명의 아들은 21살 때인가 자살했다고 한다.

여행 중이었는지 제노바에서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칼에 찔려 죽었다고 한다.

키가 170이 넘고, 허리 사이즈는 20인치, 발 크기도 작아보였다.

키 크고 날씬하며 얼굴이 예쁜 왕비라서 그런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며 쇤부른 입장권에도 시시티켓이 있었다.

기념품도 온통 시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시 티켓 안내판

 

체코도 그랬지만 오스트리아도 조상들이 남긴 궁전 때문에 먹고 사는 것 같았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만 그런 줄 알았는데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런 것 같다.

 

호프부르크 궁전을 나와 바로 정문쪽에 있던 데멜이라는 카페에 갔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커피 마실 때 꼭 케익을 같이 먹는다고 한다.

데멜은 케익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개방을 해두었는데 우리는 늦게 가서 보지는 못하고 민박집 아줌마가 알려 준대로 마로니에(밤) 케익과 사과 케익, 비엔나 커피(멜랑지, 4유로)를 시켰다.

정샘 말로는 데밀가와 자허가가 사이가 좋다가 결혼을 하면서 어떤 가게의 케익 만드는 기술이 유출이 되어 원수 집안이 되었다고 하던데...

커피 맛은 그냥 그랬는데 케익은 너무 달아서 속이 부대낄 정도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케익과 멜랑지를 시키면 작은 컵에 물 한 잔을 주는데 마지막에 입을 헹구는 물이라고 한다.

이 물이 있어서 단 케익으로 텁텁해진 입을 헹굴 수 있었다.

우리가 2층에 올라갔을 때 마침 길가에 있던 간판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가 비어서 그곳에 앉아서 사진도 찍고 하루 종일 힘들었던 다리를 쉬게 했다.

 

데멜에서 시킨 라떼와 케익들

 

지하철을 타고 국립오페라극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관람표를 끊었다.

처음이라 어느 곳에서 표를 사는지도 몰라서 먼저 정문으로 들어가서 매표소에 물어보니 위치를 알려주었다.

정문에서 봤을 때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면 출입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공연 시작 1시간 이전부터 줄을 서서 표를 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는 학생 할인표를 사려는 학생들만 줄을 서 있고, 바로 표를 살 수 있었다.

관람하는 자리는 1층에 서서 보는 4유로와 3, 4층에서 서서 보는 3유로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3유로 자리로 샀는데 숙소 아줌마 말로는 3유로 자리는 쉬는 시간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하였다.

 

발레 공연을 본 극장

 

우리가 본 공연은 오페라인줄 알았는데 발레공연이었다.

제목이 Die Fledermaus라고 하는.

쉬는 시간에 정샘이 봐둔 자리가 있다며 자리를 데리고 갔는데 난 혹시라도 주인이 오면 이상할 거 같다고 그냥 내 자리에서 서서 봤다.

발레 공연은 온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내용 이해가 쉬워 재미있게 봤다.

이런 공연이 매일 있고, 한 달 전에 스케줄이 나오면 그 스케줄을 보고 지갑에 끼워놓고 어떤 공연을 볼 건지 서로 의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정말 예술의 도시답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날씨도 굉장히 추웠는데 차려입고 늦은 시간에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것도 색다르게 보였다.

참 공연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