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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도출라고개-치미 라캉-푸나카종-서점(17.7.24)

주차장에서 본 푸나카종. 왼쪽의 강이 모추강.

 

오늘은 도출라 고개를 넘어 푸나카를 가서 푸나카종을 보고 오는 일정인데 푸나카종 가기전에 Chimi Lhakhang을 들렀다.

 

호텔에서 묵은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뷔페식은 기대 안했지만 그래도 식빵과 과일과 커피정도는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내려갔는데 착오가 있었는지 두 개 메뉴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빵 하나와 계란 두 개로 한 오믈렛, 감자, 음료(커피나 차, 쥬스)를 선택했다.

다른 메뉴는 식빵 세조각과 잼, 음료 등이었다.

오믈렛은 그냥 오믈렛과 토마토 등이 들어간 오믈렛이 있다고 하여 나는 야채를 넣은 오믈렛으로 주문했었다.

과일도 없고, 음료도 커피랑 쥬스를 다 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하라고 하여 오렌지쥬스를 달라고 하였다.

감자도 없다고 주지도 않았다. 

하루에 지불한 금액이 많은데 아침이 이렇게 부실하나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오믈렛에 들어간 야채에 고수가 들었는지 맛이 이상해서 반 이상을 남겼다.

 

도출라 고개를 넘어가면서 날씨가 맑으면 히말라야 연봉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기대를 했었다.

여행전 여행사에서 보내온 안내문을 보면 도출라 고개가 해발 3,140m에 있고, 팀푸에서 72km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고개를 넘기 전 미리 타이레놀을 먹어두면 고산병을 예방할 수가 있고, 미리 물도 많이 마셔두라고 하였다.

팀푸에서 푸나카까지는 정말 도로가 꼬불꼬불 넘어가는 고개로 시작부터 멀미로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미리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는데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지럽고 매스꺼웠는데 겨우 도출라고개에서 좀 진정이 되어 커피도 한 잔 하고, 비스킷도 두 개 먹었다.

그런데 내리막도 장난아니게 구불구불 넘어가는 고개라서 속이 정말 안좋았다.

두번째 장소인 치미라캉을 가기위해 차를 세웠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내 등을 마사지하고 두드려 주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속이 더부룩한 데는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점심 먹을 식당으로 이동하여 좀 쉬다가 화장실에 가서 올리면 좀 나을까 싶어서 시도를 했더니 아침 먹은게 다 올라왔다. 쥬스와 오믈렛이...

속을 비우고 나니 좀 괜찮아져서 식사를 하기 전 치미 라캉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식당에서 봤을 때 논을 지나 건너편 언덕에 사원이 있었다.

산에 걸쳐있는 구름과 하늘색이 정말 아름다웠다.

논두렁 사이로 난 길은 우리나라 시골의 논길과 똑 같았다.

몇 구간인지 잊어버렸는데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것 같았다.

논에 심어진 벼는 생긴 모양은 우리나라랑 똑같았는데 부탄은 우리랑 먹는 쌀이 다르다. 

찰기가 없는 인디카 쌀로 흰쌀도 있었지만 주로 빨간 쌀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벌써 벼에 꽃이 핀 것도 눈에 보였는데 가다가 보니 지금 모내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해발고도는 높지만 여름은 우리랑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정도 고도가 있어서 에어컨 없이도 창문만 열어두면 시원하기는 했다.

가끔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트럭들이 있으면 창문을 닫았고...

 

부탄 여행 책자에는 도로에서 보았던 심토카에서 도출라 고개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으로 2,250m에서 3,140m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며 올라간다고 한다.

시간은 4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중간에 관광객 검문소도 있었다. 

도출라 고개에서 푸나카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되는데 구불구불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날씨가 좋았는데 가면서 잠시 비가 왔다가 맑았다가 하더니 도출라고개를 올라가니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고개 주변에는 아름이 큰 나무들이 제법 많았다. 침엽수로 가문비 종류라고 하였다.

 

도출라 고개에는 108개의 불탑이 조성되어 있는데 드럭 왕걀 초르텐이라고 한단다.

1973년 인도의 시킴 내란에서 패배한 반군들이 부탄으로 도망을 쳤고, 인도 정부의 요청에 의해 부탄 왕은 1975년 시킴 반군을 성공적으로 소탕 하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만든 탑이자 이 때 숨진 병사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탑이라고 한다.

108불탑이 완전하게 완공된 것은 2004년이라고 한다.

 

팀푸에서 도출라 고개로 가는 길...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산중턱에 좌불상이 보였다.

아래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가보지는 못한 심토카종

 

비는 오락가락...

도로에는 주인없는 개들과 주인은 있지만 이동하면서 풀을 뜯고 있거나 도로에 멍하니 있는 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빵빵대지 않고 피해서 잘 다녔다.

부탄 도로의 특징은 중앙분리선이 노란색이 아니라서 급한 사람은 신호를 보내고 언제든지 추월을 하는 것이었다.

관광객 검문소. 가이드가 내렸다가 왔다.

도출라 고개의 108 불탑

도출라 고개의 108불탑을 둘러보다가 만난 바람꽃

도출라 고개에서 만날 수 있는 히말라야 봉우리들 안내판.

사진처럼 안개때문에 볼 수 없었는데 돌아올 때는 안개가 걷혀있기를 기대했는데 비까지 왔다.

도출라고개에 있는 카페

 

카페에서 본 108불탑

 

도출라 고개에서 푸나카 내려가는 길...

어지러워서 많은 시간을 눈을 감고 있었다.

 

계곡물이 내려오는 곳이면 어김없이 이렇게 작은 불탑과 마니다인지 룽다인지가 있었다.

물로 인한 도로유실 등 피해를 줄이려고 기도하기 위한 공간 같았다.

또 어떤 곳은 물로 돌아가는 마니차도 있었다.

그리고 불탑 옆 바위 밑에 흙으로 만든 작은 불탑을 가져다 놓은 곳들도 많았다.

도로에서 우리가 갈 치미 라캉을 바라보았다.

마을 뒤로 보이는 산자락에 사원이 보인다.

 

치미 라캉(Chimi Lhakhang)은 '드럭파 쿤리' 스님이 1499년 도출라 고개에 사는 악마가 많은 마을 사람들을 해치며 괴롭히자 금강저로 천둥 번개를 쳐서 악마를 제압한 후 금강저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에 큰 보리수가 있었고, 바닥에는 무화과 닮은 열매가 떨어져 흔적은 남기고 있었다.

가이드는 보리수 잎을 하나 가져가면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다며 하나씩 가져가라고 하여 보리수 잎을 하나 가져왔다.

치미 라캉은 또 자식이 없는 여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보낸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멀리 미국에서도 오고...

치미 라캉을 오기위해 논길을 걸어서 도착한 사원의 입구 마을은 '솝소카'라고 한다는데 남근상을 모시는 마을이었다.

기념품이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모두 남근이었고, 어떤 그림은 정자가 나오는 그림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스님이 주는 물을 손바닥에 받아서 가이드가 하는대로 따라서 해보았다.

먼저 스님이 주전자에 있는 물을 손바닥에 조금 주면 입으로 조금 마신 뒤에 이마에서 머리쪽으로 한 번 쓸어넘기고 다시 목을 쓰다듬는 것 같아서 그대로 했다.

물에서는 시원한 느낌이 났는데 편백나무 숲에서 느끼는 맛이랄까...

 

언제 속이 안좋았나 싶게 가뿐하게 걸어서 치미 라캉을 다녀온 뒤에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무래도 더운 지역이다보니 음식을 전부 기름에 튀기거나 볶아서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로 먹었다.

주로 양파와 콜리플라워를 넣은 야채 볶음이나 감자로 한 요리를 많이 먹었다.

 

식당에서 치미라캉 가는 길.

우리나라 강원도 어디나 지리산 자락 어디를 가는 것 같다.

피를 뽑는 아주머니를 보고...

맨 왼쪽에 있는 집앞에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어서...

벌써 벼가 꽃을 피운 것도 있는데 이제 모내기를 하는 곳도 있어서 찍었다.

논두렁에 있던 구아바나무.

일본 야쿠시마에 처음 갔을 때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떠나는 우리들에게 구아바 잎 말린 것을 한 봉지씩 주었던게 생각났다.

열심히 불화를 그리던 아저씨.

구경을 더 하고 싶었지만 일행들이 앞에 가고 있어서 나중에 오겠다고 했는데 돌아오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구경만 하고 나오기에는 미안해서...

사원 올라가는 길

치미 라캉을 설명하는 안내판

보리수.

벵갈보리수가 아닌지 줄기에서 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원입구. 안쪽은 사진촬영 금지.

치미 라캉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불교 관련 그림을 그리는 화실과 선물가게를 겸하는 집으로 남근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벼가 꽃을 피웠다.

 

다음으로 간 곳은 푸나카 종으로 모추강과 포츄강의 두물머리에 지어진 부탄에서 두번째로 만들어진 종이라고 하였다.

해발 1,250m에 있으며 '샤브드룽'에 의해 1637년 시작되어 이듬해 완공되었으며, 본래 이름은 '풍탕 데첸 포드랑(행복이 가득한 성)'이었다고 한다.

성의 규모는 가로 72m, 세로 180m의 긴 구조로 샤브드룽시대 유명한 건축가였던 '조 팔렙'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샤브드룽이 이곳에 와 보니 작은 성이 있었고, 1개의 불상이 있었는데 샤브드룽은 건축가에게 그 불상 앞에서 하룻밤을 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조 팔렙이 자는 동안 샤브드룽이 그의 영혼을 연화생 보살이 살고 있는 천상계(장토펠리)로 데리고 가서 구경을 시켰다고 한다.

천상의 세계를 본 후 잠에서 낀 조 팔렙은 그가 꿈에서 본대로 건축을 시작하였고, 새로운 종 건축의 신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1638년 완공된 후 여러 번 증축을 하였고, 1639년 티베트와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샤브드룽은 이곳에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커다란 사원을 지었는데 현재 이곳에는 티베트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샤브드룽 당대 사원은 600명 이상의 스님들이 머무는 승가람이었으며, 최초의 승가람은 팀푸에 있는 체리 곰파(곰바)였다고 한다.

그곳의 승려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오게 되면서 부탄 불교의 중심이 체리 곰파에서 푸나카종으로 옮겨왔음을 의미한다고 하고, 현재도 이곳은 스님들의 겨울 안거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축에 의해 새로운 국회를 열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단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성의 청동지붕은 티베트의 최고 권력자였던 7대 달라이라마가 부탄과의 화해를 위해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구조적 특징으로는 다른 종이 2개의 광장이 있는데 반해 3개의 광장이 있다고 한다.

세번째 광장에는 사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푸나카종 내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고,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연화생 보살(가이드가 두번째 부처님이라고 했던)이 남긴 보물(페마링파의 테르톤)과 성을 만들고 이곳에서 생을 마친 샤브드룽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사원을 마치 라캉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등신불 사원이란 뜻이라고 한다.

두 명의 스님이 늘 지키고 있고, 수도원장과 왕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참고문헌 : 부탄(두르가출판)]

 

 

주차장에서 본 푸나카 종.

아카시 종류가 노랗게 피어 있었는데 아무리 도감을 찾아도 같은 종류가 없어서 이름은 모르겠다.

푸나카종 올라가는 계단.

사람을 비롯하여 장수하는 동,식물.

우리 태극기에 있는 팔괘와 12지신상이 닮아서...

푸나카종의 제1광장.

큰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다.

푸나카종에서 이곳이 가장 중요한 곳으로 마치 라캉(성스러운 등신불)

푸나카 종에서 만난 노랑 아카시나무. 도감에도 정확한 이름이 없다.

푸나카종 안 정원의 바닥을 떨어진 꽃잎으로 노랗게 물들인 아카시 종류.

노랑 아카시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종류.

꽃송이가 등나무처럼 아래로 늘어진다.

 

팀푸로 돌아올 때 우리는 다른 곳보다 서점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부탄의 식물이 궁금해서 야생화 책이 있으면 구입하려고...

결국 부탄 돈으로 1,250이라고 적혀있는 야생화 책을 1눌트럼이 60정도라고 하여 21달러를 냈더니 20달러만 달라고 하였다.

책은 포켓판인데 벌써 겉표지와 속지가 분리되었다.

살때부터 불안했는데 속지와 겉표지를 붙인 본드같은 것이 날이 더워서 그런지 눅눅해지면서 떨어졌다.

그래도 우리가 부탄에 머무르며 만났던 많은 야생화 중에서 본 것들도 제법 많이 보여 뿌듯했다.

우리나라 한정식처럼 부탄의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식당의 마당 주변에는 밭으로 사과나무가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사과는 우리나라 사과의 반정도 밖에 안되는 크기였다.

 

먼저 부탄식 차가 나왔다.

차에다가 아래에 있는 쌀튀김과 옥수수튀김을 타서 먹었다.

 

부탄 가정식으로 차린 음식들..

위에서 부터 고사리 반찬, 붉은 고추와 마늘조림은 너무 매워서 아예 안 먹었고,

아래줄에는 맛이 없던 빵종류, 돼지 비계튀김도 맛이 없었고, 오른쪽은 뭔지 기억이 안난다.

맨 아래줄에는 붉은 쌀로 지은 밥, 호박 야채볶음, 닭요리, 고추와 양파로 양념한 젓갈 종류.

차린 것은 많았지만 손이 가는 것은 야채볶음과 고사리 반찬, 닭고기 반찬이었다.

 

이 글은 다음 블로그의 폐쇄로 백업 받은 자료를 2023년 티스토리로 옮긴 것임.